계급을 묻는 사회에 대처하는 교사들의 자세

이코노미한국 | 기사입력 2020/01/28 [15:39]

계급을 묻는 사회에 대처하는 교사들의 자세

이코노미한국 | 입력 : 2020/01/28 [15:39]

 

 



 



/정승양 선임기자 code1@ hankooke.com

 

여기 두장의 사진이 있다.

 

심야에 한반도를 촬영한 NASA의 위성사진들이다.

 

맨 위에 있는 사진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한반도의 야경이다. 2014년 1월30일 제38차 원정대의 일원이 촬영한 것으로, 그 해 로이터통신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한 사진이다.

 

아래 사진 역시 남북의 밤 풍경을 잘 대비해 보여준다. 2012년 9월24일 미국의 기상관측위성 수오미NPP가 촬영한 것이다. 왼쪽 아래 흰색 네모선 안의 불빛은 어선들이다. 삶을 위해 밤을 밝히는 생활 현장이다.

 

남측은 불빛으로 호화찬란하지만 북쪽은 암흑천지다. 육지와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구분이 가지 않아 한반도 남쪽 땅이 섬처럼 보인다.

 

이 두 사진이 남북한의 엄청난 경제력 차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 학계에선 인공위성에 포착된 불빛을 활용해 국가 경제 규모를 측정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각 정부가 발표하는 국내총생산(GDP)·국민총소득(GNI) 등 각종 경제 지표와 별개다. 이른바 ‘야간 불빛 지수(Nighttime Light·NTL)’라는 개념이다.

 

남북한이 소비하는 전기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이런 극단의 모습이 나타날까?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인당 전기 소비량은 남쪽이 1만162킬로와트시, 북쪽은 남쪽의 7%에 불과한 739킬로와트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지만 이념과 체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남한내 풍경도 극단으로 엇갈린다. 특히 빈부격차다.

 

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3가지는 기침, 사랑, 가난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가난은 요즘 학교에서 주택의 형태로 나타난다.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전세 사는 거지), 빌거(빌라 사는 거지), 엘사(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 임대충(임대아파트 사람을 비하하는 말), 대출거지(대출 받아 집 한 채 마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 등은 단순한 놀림거리가 아니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차별과 혐오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소위 비싼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낮잡아 부르는 차별적 표현이다.

 

소득이 적은 부모에 대한 차별은 더 노골적이다. 대놓고 벌레 취급이다. 이른바 월수입이 200만 원 이하면 이백충, 300만 원 이하면 삼백충이라고 놀려댄다.

 

아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를 줄여서 ‘기생수’라고도 놀려댄다.

 

자신보다 덜 가진 자를 향한 차별은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한 탈북민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주민들의 반대로 은평뉴타운 이전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다. 지난해 8월 서울 양천구 목동파크자이 아파트 주민들은 인근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은정초등학교 배정을 거부하며 교육청에 행정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당시 주민들은 학교에서 ‘전자파가 나온다’며 안전을 문제 삼았지만, 실상은 경제력이 비슷한 목동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소송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아크로비스타’, ‘래미안’, ‘타워팰리스’ 등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이 이름 앞에 붙는다. 또 “그 아파트 몇 동은 좁은 곳”이라는 식으로 아파트 브랜드뿐 아니라 동에 따른 크기까지 대화의 주제가 된다.

 

아파트 브랜드명의 중요성이 더해지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들은 LH 브랜드 지우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수원 호매실 능실마을 LH와 영통 이의동 LH해모로 입주민들은 아파트 브랜드 변경을 통해 'LH'빼고 시공사 브랜드만 넣었다.

 

또 LH가 분양해 2012년 입주한 대구시 북구의 칠성동의 ‘칠성휴먼시아’의 경우 작년 9월 ‘휴먼시아’ 브랜드를 떼고 시공 주관사 브랜드인 ‘대구역 서희스타힐스’로 개명해 새롭게 도색했다.

 

업계 관계자는 “LH 휴먼시아의 경우 자녀들 사이에서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낙인찍혀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며 “값싸고 질 나쁜 임대아파트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명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개학과 새 학교 입학을 앞둔 요즘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또 어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지 긴장하고 있다.

 

작년 2월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신입생 반 배정표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일부 신입생의 이름 옆에 아파트명을 표기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당시 A초교 ‘2019년 신입생 1학년 반 배정표’보도 영상 캡쳐



당시 A초교는 ‘2019년 신입생 1학년 반 배정표’를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 배정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름 중 가운데 글자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그라미로 처리했다. 일부 학생들 옆에는 아파트명이 적혀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있는 경우, ‘강○서(자이)’ ‘강○서(리버파크)’로 구별하는 식으로 표기했다.

 

반 배정 명단이 공개되자 학부모들은 민감한 정보가 공개됐다며 학교를 비판했다. A초교의 학부모들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새 아파트와 헌 아파트하고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며 학교 측의 행동이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요즘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거주지 공개는 꽤 민감한 사안이다. 고가의 아파트와 중저가 아파트, 임대아파트, 빌라 등 어떤 가격대,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는지가 친구를 사귀는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

 

학교 측은 아이들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가리자 겹치는 이름이 많이 생겼다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넣었다고 해명했다.

 

보통 신입생 반 배정표는 입학식 날 벽보 등을 통해 공개되거나, 학부모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엽서 등을 통해 개별 통지된다.

 

논란은 학교 측이 신입생 반 배정표를 게시판에서 내린 뒤에야 사그러졌다. 학교측은 잘못을 시인하며 문제가 된 신입생 반 배정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신입생 뿐일까. 새학년을 맞는 재학생들도 서로를 평가하기 바쁘다.

 

요즘 초등학교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여부가 친구관계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방학을 이용해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증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반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했거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비슷한 형편의 아이들과 그룹을 맺는다. 일명 '해외파'와 '국내파'다. 방학 때 다녀온 해외 여행지를 기준으로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끼리 파벌을 형성하는 것이다.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

 

화제가 됐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1%로 사는 부모들의 광기 어린 욕망을 보여주며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바벨탑공화국’이라는 저서에서 끝없는 탐욕으로 뒤덮인 한국 사회를 '바벨탑'에 빗대어 풀어낸다. 그가 지적하는 바벨탑이란 "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사회'의 심성과 행태,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주거지뿐만 아니라 대학입시, 취업, 일자리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는 현상들 속 바벨탑이다.

 

서열사회의 문제는 대한민국 교육계가 깊이 짚어봐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성인지 감수성’에 빗대 ‘빈부격차 인지 감수성’이라고나 할까.

 

역사속 바벨탑은 결국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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